한국 사람들은 꽤 ‘정치적’이다.
그래서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반도는 참 역동적인(Dynamic) 사건들로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그 정치적인 행동들이 반목(反目)과 힘의 충돌을 야기할 때는 안타까운 사회적 사건과 희생이 발생하곤 했으며, 그 과정에서 항상 그것을 주도한 세력보다 그것에 휩쓸려 결국 현장에서 충돌한 일반 사람들의 피해가 반복되곤 했다. 그 많은 일들이 과거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대중 집회들이(결국은 정치적 집회) 휘날리는 깃발들과 함께 진행되는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설 때면, 그 많은 일들이 지금 당장 다시 반복되어도 낯설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전쟁터 같은 이런 공간 아닌 보통의 일상에서 일상의 일들로 얽혀 들어가면 그런 정치적인 것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수도 있고 다른 목적과 이유로 또 다른 그룹핑(Grouping)이 될 수도 있다.
동네에서 만나던 세탁소집 할아버지와 어릴 적부터 봐 오던 옆집 청년이, 그냥 한여름의 평상(平牀)에서 땀을 식히며 만나면 저녁에 치맥도 같이 할 수 있고, 일거리도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경제적 양극화만큼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이는 정치 진영(陣營) 간의 양극화...
그것은 어떤 화해와 타협의 미끼보다, 일상의 협업체계 속에서 풀어내는 것이 가장 생산적일 수 있다. 그리고 오프라인의 그 지점으로 활용할 유용한 공간과 시스템이 이미 어느 정도 우리 옆에 존재하고 있다.
바로 ‘청년 공간’을 좀 더 다시 보자.


출처 : 충북청년희망센터 = 취업, 창업, 복지, 문화교류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청년거점공간 (http://www.cbhope1539.net/)

전국 곳곳에 226개의 ‘협업의 허브(Hub)’가 존재, 청년공간

전국 모든 자치 단체들이 ‘청년’을 이슈로 공간을 운영하고 있고, 협업과 활동을 위한 기능을 갖추고 관련 인력들까지 운용하고 있는 곳이 바로 전국의 ‘청년공간’들이다. (이후도 계속 더 증가 예상된다)

이 ‘청년공간’들은 인테리어나 기자재나 공간구성 등에서 각 공간별로 나름 애를 써서 구성해 놓고 있고, 좋은 분위기와 공간의 운용목적을 달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청년공간’을 ‘청년’들만 이용하는 공간보다 ‘청년’들이 주도하는 공간이 되어도 좋지 않을까?

각 지역 내에서 발생 가능한 다양한 문화/경제적 자치 소모임들, 프로젝트들 그리고 사업(Business)의 영역까지, 지역의 경험 있는 기성세대가 밀고 청년세대가 끌어갈 수 있는 곳이 바로 그 ‘청년공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는 청년들만 이용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고통을 줘야 분풀이가 되는 좌우 양극단의 정치 상황은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정치적 의도에 이용당하거나 내몰리는 허상(虛像)으로 쓰일 뿐이다.
형제와 친구들이 죽어가는 시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함께 모여들었던 백여 년 전 우리들처럼, 이미 활성화된 전국 청년공간에서 양극단을 내려놓고 ‘협업’의 시스템을 세대 협력을 통하여 풀어낼 기획들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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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혁 | Joachim Song

LOG EDITOR / INSIGHT•LOG 총괄PD / 콘텐츠 프로듀서 / 플랫폼 전문가